어머니 밥은 오빠가 할 거에요.

그렇게 중요한 일은 제가 할 수 없어요.

  -‘이상적 가정’과 ‘밥’-

 

  결혼하기 1년 전, 딸을 떠나보내기 싫었던 우리 엄마는 결혼을 하겠다는 날 앉혀두고 결혼하면 얼마나 수많은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다양한 이야기 중 가장 단골 레파토리는 ‘결혼하면 삼시세끼 밥도 하면서, 돈도 벌어야 하는 게 얼마나 고달픈 일인지 아니?’ 였다. 결혼 전 나는 ‘엄마 품을 떠나 집안일도 혼자 다 하면서 회사 다니는 게 스트레스라서 그렇게 말씀하시나보다.’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밥 이야기는 은유가 아닌 직유였다. 신혼여행 후 출근 첫 날. 회사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했던 건 신혼여행지의 날씨와 나의 오늘 아침밥이었다. 날씨야 흔한 대화주제니 그렇다 치더라도, 왜 이렇게 아침밥을 먹었냐고 묻는지 이해가 안 갔다. 엄마 밥도, 자취할 때도 아침을 제대로 먹어본 적 없는 나는 결혼해서 뜬금없이 아침을 매일같이 먹어야하는 상황이 낯설었다.

​가사분담에 대한 일상적 편견

 

  자연스럽게 대화는 가사분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고 밥은 내 남편이 전담한다는 이야기는 회사에서 새삼 화제가 됐다. 오랜 자취경력과 맛에 대한 기억력이 좋은 남편은 결혼을 하기 전부터 밥은 자신이 담당하겠노라고 공언했다. 음식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는 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현재 나는 청소부터 돈 관리, 부모님 안부전화까지 밥하기를 제외한 모든 집안일을 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우린 꽤 가사분담을 잘한 듯 했고(현재는 밥 말고도 웬만한 힘든 일은 남편이 도맡아 한다. 가사 ‘분담’이 아닌 ‘전담’해 주는 남편에게 감사), 솔직한 마음으로는 내가 집안일에 쓰는 시간이 훨씬 많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집에서 밥 안하는 유부녀’가 된 나는 그 날 이후 급속도로 호강하는 사람으로 비춰졌다. 반대로 ‘삼시세끼 밥 지옥에서 구원해준 내 남편’은 집안일을 잘 분담해주는 자상한 배우자 이미지가 되어 있었다. 회사 사람들부터 친구들, 심지어 친정 식구들까지 내가 뜨거운 불 앞에서 밥을 안 한다는 사실을 부러워했다. 근데 만약 입장 바꿔서 맛있고 따뜻한 밥을 매일 해주는 부인을 만난 남편을 이 정도로 부러워할까? 혹시 ‘좋은 마누라 만났네.’ 정도의 가벼운 부러움이 아닐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반응이었다. 두 어머님은 엄마-딸이 아닌 같은 여자로서 이 상황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남편이 밥을 하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아니?’ 혹은 ‘나머지 일은 안 해도 되는 일이지만, 밥은 꼭 해야 하는 일이다.’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내 노동은 자연스럽게 소외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먼지를 쓸고 닦고, 널려있는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의 재정 상황을 점검하고 나서야 ‘얻어먹는’ 밥인데 나는 집에서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시는 듯 했다. 시어머니뿐만아니라 친정엄마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쯤 되니 대체 밥을 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기에 이렇게 칭송을 받나 궁금해졌다.

밥짓기. 그게 뭐길래?

 

  처음에는 ‘집안일을 분담해주는 가정적 남편’에게 초점이 맞춰져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편이 매일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린다면 이 정도의 파급력은 아니었을 것이다. 같은 집안일을 하더라도 ‘밥 짓기’는 집안일의 제일 핵심이었다.

 

  ‘밥짓기’가 집안일의 핵심이 된 이유는 2가지 정도가 있다고 본다. 우선 사람들은 ‘집밥’에 대해 엄청나게 강하고 견고한 애정을 갖고 있다. 어릴 적 가장 이해가 안가는 장면 중 하나가 엄마와 아빠가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엄마가 아빠의 밥을 꼭 챙겨줬을 때였다. 미운 남편에게 왜 밥을 챙겨주느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밥 차려주는 게 나의 일’이라고 했다. 엄마는 ‘밥짓기’를 마치 매일 처리해야 하는 일, 가정에서의 내 역할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일은 설령 당장 보기 싫은 사람(남편)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하는 일(밥 차려주기)일지라도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대중매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일일 연속극에서는 무조건 함께 집에서 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중요한 대화나 평소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밥상머리 앞에서 한다. 인물들이 갈등하고 있을 때보다 가정의 따뜻함을 강조하고 싶을 때 반찬의 가짓수가 더 늘어난다. 음식을 남편이 하든, 아내가 하든 밥상머리를 ‘구성’하는 사람이 대부분 집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왜 '완전한 가정'은​ 한 종류일까?

  그리고 결혼은 통념적으로 하나의 ‘완전한 가정’을 만드는 행위로 간주된다. 자취를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사는 때는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에 밖에서 사먹거나 대충 끼니를 때워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무조건 반찬은 3개 이상 있어야 하는 정찬으로 식사할 거라고 간주한다. 사실 맞벌이 하면 밖에서 간단히 사서 먹는 편이 더 편하고, 심지어 더 잦은데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부인으로서의 도리를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은 은근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둘만 있을 땐 모르지만 1년에 2번 돌아오는 명절은 확실히 부담스럽다. 내 음식 솜씨가 시어머니 앞에서 ‘뽀록’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의 시어머니는 전통적인 스타일은 아니셔서 내가 집에서 밥을 안 한다는 걸 이미 알고 계시지만 지금은 내가 ‘어려서’ 남편이 해주는 거고, 결국 너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계시다. 내가 음식을 계속 안 배울 순 없다는 이야기이다. 근데 요새 밖에서 사먹는 가정식이 얼마나 잘 나오는데요, 어머니. 그리고 집밥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저보다 음식을 훨씬 잘하는 오빠가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난 앞으로도 ‘밥짓기’를 내가 전담할 생각이 크게 없다. 나중에 취미가 생겨 음식 하는 데 관심이 생기면 모르겠지만, 현재는 남편이 밥을 하고 내가 나머지 일을 하는 가사분담이 계속적으로 유지되길 바라고 있다.

 

  나의 결혼생활이랑 20년 전 우리엄마의 결혼생활이 다르듯, 앞으로의 딸, 아들의 결혼 생활은 또 변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가 밥을 하든, 혹은 집에서 밥을 안 해먹든 어떤 방식이든 둘만 만족한다면 그것 또한 ‘이상적이고 완전한 가정’일 수 있지 않을까?

지담(새내기 직장인이자 새댁)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우리 부모님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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