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유산- 수제화 '수제화거리의 보이지 않는 곳'

 

 

 

 

 

 

 

성수동 수제화거리는 환한 진열장, 평생을 구두에 바친 장인과 명장이 떠오른다. 성수역 내부의 슈스팟은 박물관 혹은 미술관처럼 보이고, 성수역 앞 구두공원엔 구두작업자의 동상도 있다. 하지만 한 켤레 구두가 나오기까지 한땀한땀 바느질을 한 제화노동자의 땀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년간, 그러니까 1987년 외환위기가 닥쳐 모든 것이 움츠러들었던 임금동결의 역사도 가려져있다. 화공약품과 먼지 구덩이 속 작업환경, 장시간 노동과 짧은 식사시간…. 이제 막 몸부림을 시작한 성수동 제화노동자, 족쟁이들의 목소리를 지난 9월 28일 들어보았다.

성쓰 : 훨썬 더 전에 ‘족쟁이들 모여라!’는 현수막을 봤다. 그리고 지난 9월 14일엔, 성수동 슈콤마보니 본청인 코오롱타워 앞서 집단시위도 만났고. 단체협상 중이었는데, 그 상황부터 알려달라.

제화노조 : 구두는 원청과 하청 구조로 돼 있고, 많은 제화 노동자들이 하청공장서 일한다. 하청업체와 협상으로는 애초 문제가 풀릴 수 없는 구조다. 해서 민주노총 일반지부 및 타지역 제화노동자들과 연대해 임금협상을 해왔다. 큰 곳인 세라, 텐디, 고세 그리고 코오롱에프엔씨 원청과도 협상을 타결했다.

 

성쓰 : 지난 5월부터 거리행진, 릴레이 1인시위, 원청인 코오롱 본사 앞에서도 숙박시위 등 다방면으로 긴 기간 동안 싸워왔다. 노동자들은 어떤 환경에서 일해 왔나? 요구사항은 무엇이었나?

제화노조 : 외환위기후 제화노동자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4대보험은 물론 퇴직금도 없는 소사장이 됐다. 첫차를 타고 나와 막차를 타고가면서 일하고도 켤레당 5~6천원 보수가 20년째 동결이다. 어떤 땐 깎이기도 해왔다. 제화쪽은 막내 노동자가 50대다. 새로 충원도 안 될 만큼 열악하다. 이게 20년에서 50년 가까이 일해온 ‘장인’들이 아들 알바에서 받는 최저임금만큼도 못 버는 게 현실이다. 지난 5월 텐디(낙성대쪽 업체)의 투쟁승리로부터 성수동으로 크게 자극이 왔다.

 

성쓰 : 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보나?

제화노조 : 최종 구두 판매처인 백화점, 홈쇼핑, 인터넷매장에서 떼어가는 수수료가 35%에서 40% 가까이 된다. 원청서 떼고, 하청 사장들이 떼고, 중간 실장들이 챙기고, 그러고 나면 우리들에게 그만큼만 남는 거다. 우리 업계는 밀라노처럼 1인이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완결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효율적 생산 위해 다 나뉘었다. 그러니 앉은 자리서 구두만 보다보니 우물안 개구리가 됐다. 구두만 만들 줄 알지, 다른 업종은 어떤지, 어떤 세상이 됐는지도 몰랐다. 불만은 컸지만, 요구는 없었다. 

  

성쓰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제화노조 : 퇴직금, 4대보험 문제도 해결해 갈 거다. 노동자들도 오히려 이 문제를 오해해 손해본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떼 가니까. 교육도 더 필요하다. 정책을 펴고 지원을 말할 때, 노동자들도 불렀으면 좋겠다. 나가겠다. 내부적으론 살맛나는 일터를 만들고, 인력도 키우고 싶다. 협동조합 혹은 사회적 기업도 키워서 8시간 노동, 적절한 대우 등 해주고…. 모범을 만드는 것!

글쓴이: '성수동쓰다'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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