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말하다, 여성을 말하다

내가 사는 세상, 내가 나누고 싶은 말들

내가 <여성학>을 교양과목에서 선택한 것은 1989년,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수업에 온 여학생 왈 “메이크업 배우는 줄 알았는데요!” 나도 ‘여성학’은 처음이었다. 수업은 남성과 여성의 젠더성에 주목하고, 차별에 관심을 두며, 이를 어떻게 해결해 갈 것인가를 두루두루 배웠던 것 같다. 남성성 여성성에 갇히지 말고, ‘양성성’을 상상했고, 책 <이갈리아의 딸들>도 토론했다. 그리고 대학교마다 총여학생회가 생겨났다.

 

올해가 2019년이니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9년은 겨우 집마다 유선 전화기가 한 대 있는 시절이었다.) 우리 사회는 그간 얼마나 여성의 지위와 인식이 변해 왔을까? 이즈음의 ‘여성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 혹은 가르쳐야 할까? 사회에 강하게 이는 ‘페미니즘’에 대해 각각의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학교에서 마을에서, 10대 초등학생부터 세 아이에게 ‘할머니’로 불리는 60대의 여성까지, 열 한 명이 모였다. 그들 여성들은, 각자 자신들의 삶에 대하여, 그리고 여성에 대해 말했다. . 서울숲에 둘러쌓인 정원이 있는 곳 카페 <푸르너스 가든>에서 지난 5월 24일 있었던 말들의 풍경을 전한다.

 

 

 

 

 

 

 

 

 

                             뒷줄 왼편부터 10대 고2 오혜정, 20대 신입여성 김세원, 성수동 ○○○, 세계시민 서양선,

                             10대 초6 박시연, 10대 중1 ○○○, 일러스트레이터 40대 최제희, 앞줄 왼편부터 두 얼굴

                             의 여인 60대 이삼란, 사회를 맡은 이미경, 성수동 시인 40대 최제희 그리고 직장여성 성

                             수동 ○○○.

내가 보는 우리 세상

 

이희선(40대) “아버지와 남동생은 독자였어요. 할머니랑 엄마는 소시지며 달걀같은 맛있는 반찬은 다 남자들 몫으로 줬어요. 어릴 적부터 반감이 있었어요.”

 

서양선(40대) “저는 바깥 세상서 30대까지 자랐어요. 그곳서는 자기 감정과 생각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고, 눈치보지 않았어요. 한국사회에 돌아왔을 때, 제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걸 알았어요. ‘예의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어요.”

 

오혜정(고2) “초등 중등 때는 자기 의사표현을 적극적으로 했어요. 고등학생이 되니까, 이 말을 했다가 친구 사이가 유지되지 못하면 어쩌나? 두려움과 불안이 생겼어요.”

 

김세원(20대) “제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때가 많더라고요. 마찰이 생기기도 하고, 오해와 갈등의 계기가 되기도 해요. 이제 조금씩 안으로 곱씹다가 말하고 행동해요.”

 

○○○(40대) “남편이 갱년기를 저보다 먼저 앓더군요. 다큐멘터리 보면서도 울어요. 아이가 군대 갈 때도, 남편은 울고 저는 울지 않았어요. 입덧도 남편이 먼저 하긴 했어요. 저는 모른척 했어요.”

 

이삼란(60대) “대학 졸업식날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8남매인데 제가 아버지 계신 데로 갔고, 거기서 학교에 선생님도 됐어요. 임신하니까 핍박이 느껴졌어요. 오토바이 타고 다니며 점심에 와서 젖먹이고 학교 다녔어요. 꿈에 달리기를 하면 나만 뒤쳐졌어요. 지금 나는 복지시설을 운영해요. 서울엔 수필 출판기념회 때문에 온 거에요. 큰 애는 커서 나처럼 세 아이 엄마예요. 난 이제 겨우 60대인데, 걔네 집만 가면 할머니인 거예요. 다른 건 다 스톱이고…. 그 두 삶이 다 내 거예요.”

 

내가 우리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주제는?

 

 

 

 

 

 

 

 

 

 

 

 

 

 

 

 

                                사회를 맡아준 이미경 님은 세 아이의 엄마다. 아이디어도 많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금호동의 일꾼. 이날 그는 “내가 ○○인 거 알면 깜짝 놀랄 걸?‘을 화두로 2부를 시작했다.

                                제일 오른쪽이 사회를 본 이미경 님.

오혜정(고2) “어느날 한 고등학생 아이가 엄마한테 그랬어요. ‘우리학교에 괴롭힘 당하는 친구가 있어. 내가 같이 다니면서 친구가 되는 게 좋을까?’ 그러자 엄마가 대답했대요. ‘그런 아이랑 다니다가 괜히 피해보지 말고 살던 대로 살아!’ 다음날 엄마에게 그 말을 했던 친구가 극단적 선택을 해요. 괴롭힘 당하는 친구가 사실은 자신이었던 거였어요. 여러분은 그런 소릴 들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40대) “초등학교 다니던 아이가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사도 하고 전학도 하고 해서 힘들었나 봐요. 나는 그럼 그만두겠다고 선생님께 이야기해라 했어요. 그리고 돈 벌어 와야한다. 나는 일을 그만 두겠다. 일을 하는 건 너희들 뒷바라지 하고, 맛난 것도 사주는 건대, 그럴 보람이 없구나.”

 

최제희(40대) 제 얼굴만 보면 잘 놀게 생기지 않았잖아요. 근데 술 안 마시고 춤도 출 수 있어요. 같이 놀면 재미있게 놀 수 있어요.

 

이희선(40대) “어머나 나는 내가 잘 못 논다는 거 알면 깜짝 놀랄 걸요? 다들 그렇게 안 봐요. 참, 나는 최근에 미용실 사장님께 물었어요. 꿈이 뭐였냐고. 그러자 눈물을 흘려요. 아무도 자신에게 물어봐 주지 않았다고.”

 

이날의 이야기는 한 시간 반쯤 이어졌다. 못다한 주제로 다시 모여 이야기하자고 아쉬움을 달랬다. 여성만이 가진 고유한 삶이 특성이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이 우리 인간이 가진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경동초 축구부에 첫 여자선수가 생기길 기대한다. 성동구민센터 줌바댄스에 남자회원이 어색하지 않을 때도 오겠지. 그런데 그땐 유치원에 더 많은 남자선생님도 계시고, 대학교수도 기업의 CEO에도 여성이 더 많이 채워졌을까? 우리가 남자 여자의 차이보다는 훨씬 더 개인의 차가 크니까 말이지.

 

 

 

 

 

 

 

 

 

 

 

 

 

 

 

 

 

 

 

 

 

 

 

 

정리: 원동업(성수동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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