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20대의 나

임신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3일 뒤 배에 품고 있던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 먼발치서 아이 크는 모습을 지켜볼 사람들은 마냥 아이의 탄생을 기뻐하지만, 나는 걱정이 아이 탄생의 기쁨보다 더 앞선다. 아이에게 남은 젊음과 시간을 빼앗길게 불 보듯 뻔해선지 설레는 마음이 안 생긴다.

임신 기간을 돌이켜보면 정말 다행스럽게도 특별한 문제없이 무난하게 보냈다. 주변의 배려 덕분에 업무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회사에 지각 한번 한 적 없고, 내가 담당하는 행사도 잘 마무리하고, 인수인계도 충분히 한 후 휴직을 했다. 동료들한테 임신 때문에 무거운 거 들어달라고 먼저 요청한 적도 없고(다행히 먼저들 도와주셔서 참 감사하다), 임신했다고 고과 잘 안 나올까봐 업무 시간에 나가 다른 곳에 누워 있어본 적도 없다. 다들 잘 배려해주셨지만 휴직 전에 혹시 평판 안 좋아질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아등바등 열심히 회사 생활 했지만 승진 연차에 아이를 낳게 되어 복직하면 동기들이 다 승진을 하고 나만 유예될 것이다. 아쉬운 대로 휴직 후에는 여태까지 미뤄 온 여행도 하고, 홀로 가뿐히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들을 잘 누리려 애썼다. 3일이 남은 지금까지도 못한 게 너무 많아 아쉽고, 집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기분이 들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체력과 컨디션이 받쳐줘서 가능한 일이라 참 감사하지만 아이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임신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 든 건 아니었다. 임신성 당뇨를 겪으며 몸 속 아이와 나 사이에는 큰 선이 생겼다. 고생스럽던 입덧 이후 밥을 좀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때쯤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았다. 다이어트를 한 적 없는 내가 한창 배고플 때도 냉장고 앞을 서성일 뿐 마음껏 먹을 수 없다는 게 스트레스였다. 심지어 밖에서 사먹는 음식도 당뇨에 좋지 않아 매일 도시락을 싸서 회사에 가야 했다. 가뜩이나 몸이 무거운데 도시락까지 싸서 출근하려니 컨디션은 나날이 안 좋아졌고, 하루에도 네 번씩 피를 뽑고 손가락에 피딱지가 생기는 혈당 검사도 부담스러웠다. 혈당이 오르면 많이 먹은 내 탓만 해대는 내과 의사와의 진료도 스트레스였다. 아이 때문에 생긴 당뇨라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임신 상태가 기다림과 설렘보다는 원망과 짜증으로 변했다. 미국에서는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으면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받으므로 심리치료사를 붙여준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상담이라도 좀 받아볼걸 싶다.

아이에 대한 적대감만 생긴 상황에서 기대감과 설렘, 은근한 희생을 강요받는 분위기는 더욱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말끝마다 ‘아이를 위해서 이렇게 하세요.’라는 조언질을 듣고, 낳아보고 아이 성향을 봐서 워킹맘을 할지 전업주부를 할지 결정하겠다고 해도 애는 엄마가 봐야 한다는 소릴 듣기도 했다. 여태까지 한 일을 다 까먹고 승진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직무로 복직을 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인데 내 상황도 모르면서 회사를 그만두라는 옵션을 제시하다니. 워킹맘이 되면 아이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늘 미안하고 죄책감이 생기지만 전업주부라고해서 아이와 양질의 시간만을 보내는 것도 환상 같은데 말이다. 가족끼리 협의해서 선택할건데 뭘 선택하든 홀가분하게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이제 불가능해진 것 같다.

업무가 아니더라도 뜬금없이 아이를 낳는다는 건 대단하다고 띄워주며 아이와의 계획만을 묻는 사람들도 많다. 좋은 의도로 한 소리겠지만 내 삶은 그냥 순식간에 삭제되고 엄마로서의 계획만 물어보는 기분이다. 아이가 나오면 행복해서 저절로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하게 된다는데 그 마음은 죽어도 이해가지 않으니 불안하기만 하고 내 인생이 없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만들어놓은 커리어를 다 버리고 뜬금없이 스물아홉 아기 엄마가 됐다. 어느 날 돌아보면 내 이름 대신 누구누구의 엄마로만 불릴 것이다. 자기 결정권은 사라지고 갑자기 덜렁 생긴 아이가 왜 아픈지, 왜 우는지 이해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 순간에도 아이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엄마라 미안해해야 한다. 그 동안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느라 참 고생 많았는데 이젠 날 놓아야 되나.

잘 가라 나. 그동안 수고 많았다.

​지담(성수동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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