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수동쓰다

(2018 성공소)“성수를 ‘진짜’ 거닐다”

<성수도시재생 공모사업을 소개합니다>

‘성수를 거닐다’ 탐방기


  “도시산보자는 거리를 배회하면서 사물을 관찰하지만 동시에 그 스스로가 사물 및 공간에 의해 주시되고 그것들이 요구하는 바를 읽어야만 한다. 산보자는 대도시의 빠르고 화려하게 변하는 시공간적 문화에 동화되지 않기 위해 저항적인 몸짓과 인식을 취한다. 그런 의미에 서 산보자가 느리게 걷는 것은 기계적인 리듬에 종속되지 않는 가운데 내적인 감수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삶의 성찰적인 리듬을 회복하려는 제스처에 다름아니다” -발터 벤야민-


  대도시에 태어난 우리는 살면서 많은 걸음을 옮긴다. 출근하면서, 장을 보면서,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면서 온통 도시를 쏘다닌다. 그리고 휴일이면 굳이 야외로 나가 시간을 또 보내기도 한다. 우리에게 도시라는 공간은 경제적·문화적·거주지적 ‘기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에 따라 도시의 변화는 기능의 상실과 변화로 읽힌다. 골목에 있던 문방구가 사라지고 다이소가 들어서도, 동네 빵집이 사라지고 파리바게트나 뚜레주르가 그 자리를 차지해도 우리는 새로운 가게의 외관이나 상품에 관심을 더 갖는다.

  하지만 그 지역역사의 중요한 단편이었던 작은 가게들과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지는 그저 묻혀버리고 시간이 지나면 망각된다. 그렇게 점차 한 가지 색으로 도시는 물들어버리고 점차 우리는 미학적으로도 미시역사의 한 단면으로써도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듯하다. 벤야민의 말처럼 우리에게 산보가 중요한 것은, ‘도시가 강요하는 삶의 리듬과 가치관에서 조금은 물러나 우리를 관조할 수 있게 함’에서 비롯될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현재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나 마을공동체의 파괴, 고독사와 같은 문제들은 우리가 산보라는 중요한 활동을 잊고 산 시간 속에서 퍼져나간 듯 하다.




  내가 동네가이드로 참여한 성수도시재생센터의 주민공모사업으로 시작한 ‘성수를 거닐다’ 프로그램은 그런 차원에서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성수지역을 실제로 산책하며 각자 사진을 찍어 모든 산책이 끝나면 이 사진들을 모아 전시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5월 17일 비오는 오후 우리는 정기엽작가와 함께 뚝섬우체국 앞의 마을카페인 비썸(b.some)에서 먼저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성수동의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뚝섬이라는 지명에 대한 설명이 먼저였다. 많은 사람들이 뚝섬의 어딘가엔 섬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들 실제 섬이 있는지 하필 왜 뚝섬인지 확인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바쁘니까.   한강과 인접한 성수동은 예로부터 물난리를 자주 겪었다. 그래서 한강물이 크게 범람하기라도 하면 그 넘친 물로 인해 다른 지역과 고립되기 일쑤였다. 그때는 마치 섬으로 변했다고 해서 섬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뚝이라는 지명은 어디서 왔을까? 이 명칭은 ‘치우천황기(旗)’를 뜻하는 ‘둑’에서부터 유래했다. 우리나라에 환난이 닥칠 때마다 우리를 도왔다고 하는 치우의 사당이 있던 곳이 바로 현재의 뚝섬역 인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성계의 화살을 기둥 뒤로 피했던 태조 이방원의 일화에서 비롯된 살곶이 마을, 과거 병사들의 훈련장이었던 연무장길 등 우리는 성수 지역의 지명의 의미를 먼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요즘 ‘핫’하다고 언론에 소개되는 서울숲역 인근에서부터 성수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웅덩이 마을을 거쳐 아파트 단지들이 즐비한 주거지를 최종 목적지로 정하고 산보를 시작했다.   서울숲역 인근은 소위 핫플레이스 혹은 힙한 장소로의 변화가 시작된 그런 장소였다. 20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해장국집과 트렌디한 스테이크 비어가 혼재되어 있고, 거중기가 상주하는 그런 곳. 낡은 자전거를 타고 후줄근한 와이셔스를 입은 오랜 주민들과 누가 봐도 데이트 복장같은 옷을 갖춰 입고 연인의 손을 잡고 놀러온 방문객들이 또 혼재되어 있었다. 오래된 순대국집 간판은 여전히 달려있지만 내부는 완전히 새로운 인테리어로 공사하는 저 가게는 이곳은 성수의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그리고 우려를 나타내는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도로를 하나 가로질렀을 뿐인데, 우리는 성수동의 과거를 갑작스레 직면했다. 성수1주택 재건축지역으로 지정된 웅덩이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수다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보이는 이름은 떨어져나가 확인할 수 없는 ‘맨션’들은 30년 전에 한창 유행했던 주거건물명이다. 요즘은 빌라로 많이 불리지만. 이 맨션들 앞을 지나가다 쓰레기 통에 들어있는 비디오 테잎들과 주인은 오간데 없는 조그만 금형공장. 도로 하나의 온도차는 정말 컸다. 모두가 알고 있는 핫플레이스 성수동 안의 진짜 핫플레이스는 바로 웅덩이 마을인 것 같았다. 산보 내내 별 말없이 걷던 모두를 시끄럽게 만든 걸보면 말이다.




  그리고 웅덩이 마을에서 성수쌍용아파트로 이어진 10미터 정도의 골목은 우리를 다시 현대로 뱉어내었다. 마치 ‘백 투 더 퓨쳐’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말이다. 갑작스런 현재의 도래에 조금은 어색스러움을 느꼈지만 이내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아파트들 앞을 걸으며 성수의 과거, 즉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웅덩이 마을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획일화된 개발방식과 언론의 호들갑으로 인해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사라지는 풍경들에 대해 말이다. 그래 그렇게 우리는 성수를 ‘진짜’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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