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수동쓰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왜 20대는 고통스럽거나 패기로워야 할까?


-위로는 필요 없다-







젊어서, 혹은 건강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의 나이 20대. 사람들은 20대를 대단히 특별하게 바라보고, 미디어도 이에 발맞춰 20대를 열정, 순수, 패기 등의 이미지로 그려낸다. 하지만 지금의 20대도 그럴까?

20대를 넘긴 사람들이 20대들을 만나면 보통 2가지 자세를 취한다. 우선 20대 때 취해야 할 자세라든지, 그때 꼭 해야 할 것들을 조언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세계를 여행해보라, 가슴 뛰는 연애를 해보라, 패러글라이딩을 해보라, 외국어 하나 정도는 능숙하게 공부하라 등등 종류가 다양하고도 많다. 주로 자신이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좀 더 놀았을 텐데, 학생 때가 좋았지 등등의 말들과 조언들을 섞어서 이야기 한다. 그들은 마주앉은 20대가 조금이라도 힘들다고 불평하면 지금 네가 얼마나 행복한지, ‘쓰잘데기 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지 엄하게 꾸짖는다.


한편 구직난에 시달리는 ‘불쌍한’ 청년들을 위로하거나 공감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청춘들을 위해 연예인들이 인생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콘서트가 빈번하게 개최되고, 뉴스에서는 연일 청년 실업 문제를 떠들어댄다. 앞서의 꼰대들보다는 점잖은 이들은 자신들의 20대에 비해 포기할 것이 많은 삶을 물려주었다며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현재의 사회나 경제 구조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한다. 주로 셀럽들이나 정치권에 계신 분들이 ‘교양 있는 어른’의 모습으로서 이와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청년층 전체가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며 가난하고 불쌍하게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언뜻 이 두 가지 대화 방식은 상극인 듯 보인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20대를 대하는 태도다. 양 쪽 모두 20대에 대해 생각하는 상이 확고하고, 자신의 경험을 상대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두 부류 모두 자신이 먼저 20대를 거쳐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우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70대 노인에게 ‘자고로 노인은 점잖은 태도를 갖추어야 해요.’라고 면전에서 말하는 20대는 없지만, ‘20대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어르신들의 훈계조의 대화는 아주 쉽게 들을 수 있다. ‘불쌍한’ 청년들을 위로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대 시절의 나’에 비해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청년들이 안쓰럽다. 꼰대들과 같이 비교 준거는 ‘20대 시절의 나’다. 그때의 나에 비해 행복해보이면 꼰대, 그때의 나에 비해 불쌍해 보이면 위로해주는 사람이 될 뿐이다.

또한 자신들이 동경했던 ‘안정적인 삶’을 새로운 세대에게 주입하고, 그에 부합하지 못하는 20대들을 예외적인 케이스로 취급하기도 한다. 대학 때부터 너의 인생은 자유이며 무한한 선택의 가능성이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20대들은 이미 ‘대학-취직-결혼-출산-육아’타임라인을 인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내재화하고 있다. ‘안정적인 삶으로 가는 여정’은 20대들한테 당연하게 스며들었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밑바탕을 만드는 것이 20대들의 과업처럼 되어버렸다.


나만해도 대학 4년, 석사 2년, 연구원 1년 그리고 직장생활 2년차이자 새댁이다. 극히 평범하지만 빈틈없는 타임라인을 기계적으로 만들어내는데 20대 전체를 바쳤다. 명절에 밥상머리에만 앉으면 어른들이 묻는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은 언제 할 건지, 취직을 하고 나면 결혼은 언제 할 건지. 이 두 가지를 성취해 낸 나한테는 요새 애는 언제 가질거냐 묻는다(참고로 나는 28살이고 한국 초산 연령은 31.4세다.).

당연한 타임라인을 조금이라도 비껴가면 우리는 그들을 ‘패기로운’ 청년이나 ‘아웃사이더’로 그려낸다. 물론 정말 상황이 여의치 않아 포기해버린 사람도 있지만, 결혼이 하기 싫어서 비혼주의를 ‘선택’한 사람도 어른들 눈에는 결혼 포기자와 동급으로 취급당한다. 내 집 마련 대신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청년은 ‘정신 못 차린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캠핑카 여행으로 성공을 하면 아마 사회에서 찬밥 취급을 받던 ‘아웃사이더’에서 ‘패기로운 청년’으로 둔갑할 것이다.


패기롭지 못했던 나는 범생이처럼 사회(기득권 세대)에서 시키는 요구들을 척척 해갔다. 기성세대가 세워준 목표를 내재화하여 안정적인 기업에 취직하고 결혼하여 4인 가족을 꾸리는 게 가장 행복하고, 안전한 길이라고 믿었다. 사실 아무도 이 길이 가장 행복하다고 보증해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래선지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늘 의심하고, 새로운 선택지를 고민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8-90년대보다 취직이 안 되는 사회적 환경보다 20대들을 더 숨 막히게 하는 건 ‘정상적인 타임라인’일지도 모른다. 좀 놀다가도 번듯한 기업에 언제든지 취직을 할 수 있다면, 이름 있는 대학을 20대 초에 졸업해야만 돈을 괜찮게 벌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면 조금은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정상적인 타임라인’을 준수하며 그 와중에 여행도 다니고, 외국어도 좀 배워야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20대들의 목표가 되는 것도 문제다. 이렇게 되려면 어느 정도 부모의 지원이 필요하다.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월세도 내고, 등록금도 내고, 해외 어학연수도 다녀오면서 교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대학 등록금을 빚지고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수업을 들으면서, 취직에 해가 될까 장기간 휴학도 할 수가 없다면 학점이 잘 안 나오는 게 당연지사 아닌가? 결국 등록금 대주면서, 어학연수 보내주는 부모 밑에 있어야 더 좋은 곳에 취직을 한다. 20대 초반부터 대물림되는 부는 무시하고 모든 책임을 오롯이 20대들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예전 스위스 교환학생을 갔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게 있었다. 스위스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갈 때까지 1년 동안의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그 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 기간이 길어져 길게 여행을 하고, 3-40대에 취직을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과 달리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실제로 교환학생 때 만났던 동료 중 40대 부부가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결혼을 했지만 각자 월세 방에 거주하고, 대학에 다니며, 기숙사 공동 주방에서 식사를 한다.


20대의 삶을 넘치거나 모자라다고 평가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개인의 선택을 방해하고 하나의 선택지만을 강요하는 사회를 바꾸는 방향이 위로보다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아직도 20대를 ‘먹고 대학생’으로 규정하는 이들이 사라져야 되는 건 말로 할 필요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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